이야기

#SNS악플러(키보드워리어)

진료실 단상 (2019.04.12)

정말 힘든 환경에서 고군분투 하면서 견뎌나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면 울컥해지고,  
어떻게 그렇게 힘든 환경을 저리도 꿋꿋이 해쳐왔을까 싶어 와락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투사를 일삼으면서도 내적성찰을 하려들지는 않는 환자를 대하면 막막하고 나 자신도 우울해지다가
힘들게 견디면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그래서 감동을 주는 환자를 
대하면 숙연해지고, 보람을 느끼면서 재충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 
이 직업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적당히 해라 (작성일 19.01.21)

남편이 비람 피우는걸 아내에게 들켰다.
애초에 이혼할 생각은 없었던 남편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라고 맹세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며 
납작 엎드려 지내기로 결심 한다.
아내는 남편의 용서를 구하는 태도,  
조물조물 커나가는 아이들, 
세상의 이목 등등 여러가지 걸림돌들 때문에 
깨박치고 싶은 걸 꾹꾹 눌러참고 지내보기로 한다.
그러다가 남편의 무신경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 
간신히 덮어두었던 상처가 다시 들쑤시어진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굳은 줄 알았던 땅은 역시 물허벙 이었다.
또다시 가시돋힌 저주의 말들을 쏟아내는 아내와 
그에 시달리는 남편.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면서 
죽을 때 까지 용서를 빌며 살리라던 남편의 인내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마침내는 "적당히 해라, 지겹다, 이젠 그만하자"라고 소리치는 
지경에 이른다.
모든 일에는 적당히 라는게 있는데
우리는 이 적당히를 못하고 도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옛날 이야기 (작성일 19.01.16)

지금으로 부터 수십년전, 
나의 어린 시절에는 한옥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에 해가 져서 어스름할 저녁 무렵, 
엄마들이 아이들 저녁밥 먹이려고  불러들일 때까지 동네 꼬마들 노는 소리가 온종일 그치질 않았었다.
지금 같으면 자기 집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아파트 관리실 통해서 당장 민원이 제기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생계에 매달리느라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없는 어른들은 이웃집 형아, 누나들이
우리집 꼬맹이를  잘 보살펴 주겠거니 믿고 마음놓고 일할 수 있기도 하였다. 
아이들 스스로 커나간 셈이기도 하다.
요즘 같다면 어른 감독이 없이 아이들끼리 밖에 내놓다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펄쩍 뛸 일이지만 그 때는 그랬다.
옷은 허름했고, 장난감 더미에 묻혀 곧 싫증을 내는 요즘 아이들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나무토막 몇개, 공깃돌 몇개,  깨진 그릇, 깨진 기왓장 으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는 놀이가 무궁무진 하였다.
지금의 1회용 플라스틱 숟가락 같은 것으로 길거리에서 팔던 빙수를 맛있게 떠먹던 추억이 있다. 
빙수위에 뿌려주던 빨갛고, 파란 색깔의 달달한 물은 아마도 식용이 아니었을런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것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심지어는 배탈도 나지 않았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다양하고, 맛있고 고급진 음식도 많고, 기능이 뛰어나고 좋은 옷들도 넘처난다.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풍요로워진게 맞는데 사는 것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왜 더 낮아진 것일까.
윗층 사람들이 내는 생활소음에도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아이들은 학교, 학원, 집에서 뺑뺑이 돌며 왜 하루종일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일까.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하루종일 공부에만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뛰어놀던 옛 시절의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나라 지방 도시, 강이 어디에 있는건지도 모르게 된 것일까.
아이들이 하루종일 동네에서 뛰어놀게 놔둔채로 엄마들은 마음놓고 집안 일을 할 수 있었던,  
정신적으로는 지금 보다 훨씬 더 행복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